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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란?

농촌은 도시와는 구별되는 사회지리적 공간으로써 농촌에서는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인류의 문명은 일정한 장소에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농사를 지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경작을 기반으로 했던 안정적인 식량 생산은 원시적인 농촌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농업 생산력이 증가하였고 토지의 사적 소유가 확대되었고 상품 시장이 발달하면서 농촌과 도시의 분리가 일어났다. 

농촌의 역사적 변천

전통시대 농촌

전통사회는 농업에 의존적인 사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작지를 중심으로 되어있는 농촌 마을에 거주를 했었다. 이 때의 농촌마을은 거주지 뿐아니라 노동력을 협력적으로 사용을 위한 기본 단위였다. 농촌에는 품앗이나 두레나 계 등과 같이 지역사회의 통합과 효율적으로 농업을 생산하기 위해서 제도들이 발달해 있다. 이렇게 농촌에 발달한 경제. 문화적 제도들은 강한 공동체 의식과 지역문화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를 하였다. 또한 혈연을 강조하는 집성촌이 많았었던 것도 우리 전통농촌의 특징이다. 

벼농사의 경우 백제의 1세기 초부터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벼농사의 도입은 가용 식량이 급속하게 증가를 해서 인구 증가에 크게 도움을 줬을 것으로 보고있다. 조선 후기에 이앙법 등의 농업기술 발달은 광작을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토지의 소유 구조가 변화되었으며 토지의 소유와 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로인해 부농 10%가 전체 농지의 43%를 소유하게 되는 토지 집중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다양한 통치제도들을 마련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향약이다. 향약은 사회규범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제재를 가하면서 농촌의 질서를 유지시키고 통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조선 16세기 후반 이후에 향약이라는 제도가 안정적이 되었으며 이로인해 계급관계가 정착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농민들의 협동적인 질서를 보여주는 제도로는 계가 있다. 계는 지역적인 것과 혈연적인 것이 상호 협동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로 조선말기에 이르면서 서민들의 경제적인 상호부조를 위한 계가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농촌

한반도의 농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지배하면서 이다. 일본은 20세기 초에 급속한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심각한 식량위기를 겪게 되었는데 이때 도시 근로자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이로인해 일본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났었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일본 농민들에게 농지 제공을 위해 조선에 대한 농촌 재편작업이 이루어 졌다. 이것을 위해서 일본은 1910년부터 조선에 대한 대대적인 토지 조사사업을 실시하였고 이는 경제적 수탈을 위한 기초 작업이 되었고 이를 통해서 일본인이 정착하는데 있어 필요한 물적 토대를 만들었다. 또한 일부 조선 양반 계층을 식민지 지주로 포섭을 하였다. 그러면서 수백만의 농민들을 영세소작인으로 전락을 시켰으며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일본인 지주 계급이 형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에 의해서 토지 집중화가 일어났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4%의 지주가 65% 이사의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고 농민 80%가 소작인으로 전락하는 사회체계가 되었다. 

현대의 농촌

한반도의 소작농들에게 새롭게 희망이 된 것은 광복이다. 광복이 되면서 농민들은 착취적인 제도의 폐해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게 되었다. 남한에서 농지개혁은 지주-소작관계를 없애고 농민적 토지소유를 공고히 해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확립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귀속농지의 분배는 1945년에 이루어 졌으며 귀속농지를 제외한 일반농지에 대한 농지개혁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이 된 수에 실시되었다. 1960년 중반 이후에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가 심화 되었고 이에 농민들은 불만이 높아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이중곡가제와 새마을 운동을 실시하였으며 곡물 수매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촌은 더욱 피폐해졌고 농산물 수입은 증가하였고 추곡수매가가 동결 되면서 농민들의 생활 수준이 더욱 악화되어졌다.

농촌 인구 감소, 고령화

시간이 흐를수록 농촌의 위기는 커져가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화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63%가 농업에 종사를 하였지만 계속되는 이농과 혼인률 감소와 출산 저하 등이 농촌의 인구 감소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는 농촌의 급속한 고령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위해 또는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서 도시로 나가는 사람들이 늘면서 인구의 감소가 되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농사를 지을 후속세대들의 단절을 초래하게 되었다.

다문화 가정의 증가

젊은 여성들이 도시로 이주하게 되면서 농촌에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생겨났으며 바로 농촌에 남아있는 남성들이 배우자를 찾기 어려워 진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촌의 일부 총각들은 국제결혼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농촌에는 다문화가정이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는 고령화 문제를 완화하고 농촌사회의 재생산에 크게 기여할 것이지만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인권이나 의사소통, 자녀 교육 등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된다.

지역 발전의 불균형과 농업의 위기

정부의 도시 산업 중심의 발전 전략은 도시와 농촌간의 발전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었다. 농촌의 물적 자원이나 인적 자원이 도시로 이동하게 되면서 농촌이 어려워지는 구조적인 조건이 만들어졌으며 낮은 농산물의 가격은 농가의 소득이 감소하고 도농격차가 심화되면서 농민의 빈곤화를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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